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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쉬운 검색  
2006/10/26 19:28
태그 :
카테고리 : 인수 & 성예의 일상
예전에 이글을 읽으면 손석희 아저씨가 정말 멋져보였다. 물론 지금도 멋진 분으로 살아가고
계신분이지만 말이다.

나의 30년은 사실 "절실함"에 있어서는 상당히 여유롭게 살아온것 같다. 뭔가 큰 목표를 세우고,
해 내겠다는 의지 보다는 현실에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기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온 것같다.
- 집 사람은 나처럼 게으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구박하지만 말이다. -
여기와서 느낀 것이지만, 다들 자신의 현재 생활에 절실하게 메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에 시작부터 정말 많은 고민들을 열거해 놓고 지워 나가다가
다시 판을 뒤집고 다시 정리하고 하기를 반복한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몸의 편함보다는
그 절실함을 쫒고 있는 것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바로 내옆에 있는 "인"도 그렇다.
화이링~~~~

나도 이제는 나의 인생에 대한 절실함을 느껴며 살아야겠다. 그.. 국어시간에 배운 3인칭
시점의 관찰자가 아니라.. 1인칭 시점으로 말이다.

아래는 그 때 읽었던 손석희 아저씨의 멋진 글을 적어 놓았다.

----------------------------------------------------------------- written by 손석희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반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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